비행기 값보다 더 무거운 현실, 여행이 사치가 된 시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미국 항공업계는 활기를 띠고 있었습니다. 팬데믹 이후 억눌렸던 여행 수요가 폭발하면서, ‘여행 르네상스’가 올 거라는 장밋빛 전망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 흐름이 급격히 꺾이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세 정책 재개 움직임과 정부의 지출 축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불확실한 경제 전망 속에서 미국 항공사들은 2024년 1분기 실적 전망을 일제히 하향 조정했습니다. 미국 내 인플레이션 압박이 계속되고, 기업과 개인 모두 지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항공·여행 업계는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특히 2030세대에게 여행은 점점 더 ‘가성비’가 아닌 ‘사치’로 전락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미국 항공업계의 변화가 왜 우리에게도 중요한지, 그리고 향후 여행 산업과 소비시장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지 짚어보겠습니다.

  

항공 산업의 위기


“여행보다 월세가 먼저”…밀려난 우선순위

S&P500 항공 지수는 올해 들어 약 15% 하락하며, 전체 지수보다 더 부진한 성적을 보였습니다. 특히 델타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의 주가는 20% 가까이 빠졌습니다. 이 수치는 단순한 주가 하락이 아니라, 소비 심리가 얼마나 위축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저가항공사 브리즈 에어웨이즈의 CEO는 “사람들에게 우선순위는 식료품과 주거”라며, “여행은 그 아래로 밀려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고물가 시대에 여행은 '필수 소비'가 아닌 '선택 소비'로 분류되고 있으며, 이는 2030세대에게 더욱 크게 체감되는 부분입니다.

실제로 덴버에 거주하는 한 교사는 비행기를 타더라도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당일치기로 여행을 다녀오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최소 비용 여행’이 하나의 생존 전략처럼 변모하고 있습니다.


줄어든 비행기, 줄어든 출장…기업도 움츠렸다

개인 소비뿐 아니라, 기업 출장 수요도 감소하고 있습니다. 1~3월은 연중 두 번째로 출장 수요가 높은 시기지만, 실제 예약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델타항공은 올해 1월에 기업 예약 증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10%였지만, 2월부터는 한 자릿수 초반으로 둔화됐다고 전했습니다.

유나이티드항공은 정부 지출이 줄어들면서 관련 출장 예약이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공공 부문의 지출 감소가 민간 항공 수요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소비 지출 데이터에 따르면, 2월 항공사 관련 신용카드/직불카드 결제는 전달보다 7.2% 감소했습니다. 이는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로, 여행 소비 위축이 실제 수치로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국내 항공사들도 긴장하고 있습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북미 노선 수요에 일정 부분 의존하고 있는데, 미국발 출국 수요가 줄어들면 한국행 노선 수익성도 직격탄을 맞게 됩니다. 특히 미국 내 환승객 비중이 높은 인천공항 허브 구조상, 미주는 전략 노선입니다.

또한 한국 LCC(저비용항공사)들은 일본, 동남아, 중국 외에 최근 미국 노선 신규 진출도 시도하고 있어, 글로벌 경기 민감도에 더 취약한 구조입니다. 이미 제주항공, 진에어 등은 2024년 초 실적 가이던스를 보수적으로 제시한 상황입니다.


트럼프의 관세가 왜 여행에 영향을 미칠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 캠페인을 통해 예고한 관세 강화 조치는 단순한 대외 무역 이슈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미국 내 경제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관세는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고, 이는 곧 인플레이션 압박으로 이어집니다. 물가가 오르면, 소비자들은 필수 항목이 아닌 항공·여행 지출을 가장 먼저 줄이게 됩니다.

이러한 흐름은 미국 내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글로벌 경제는 연결돼 있고, 미국 여행업계의 침체는 세계 관광 시장에도 파급 효과를 미치게 됩니다. 한국 역시 미국 항공사와 제휴를 맺은 노선들이 많고, 관광객 유입·유출의 흐름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항공사 주가가 단기적으로 추가 하락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특히 미국 항공사들은 유가 상승과 고금리 이중 압박에 직면해 있어, 반등보다는 변동성 장세가 예상됩니다. 국내 항공주도 이를 반영해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하향 조정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LCC 중심의 종목은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지출은 줄고, 기회도 줄고…지금 필요한 건 여행&투자 전략

트럼프의 관세 강화와 정부 지출 축소는 단지 정치 이슈로 끝나지 않고, 소비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항공업계의 수요 감소는 결국 일자리, 관광업, 숙박업으로까지 이어지는 연쇄적 파급을 일으킵니다. 이는 단기적 침체가 아닌, 구조적 변화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2030세대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해외여행·출장의 전략적 소비, 즉 ‘언제,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가’를 계획적으로 설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행산업 내 투자 흐름 파악입니다. 예컨대 항공사 주가 하락이 반영된 ETF나 여행 관련 리츠(REITs) 등에 주목해보는 것도 하나의 접근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여행을 포기할 때가 아니라, 현실에 맞는 방식으로 리디자인할 때입니다. 감정적인 소비가 아닌 전략적인 소비가 필요한 시대, 여행도 예외는 아닙니다.